옛 마을풍속
풍속은 지방마다 관습적으로 다양하고 조금씩 독특하니 다르게 변하여 행해지는 것도 있고 현 제 많은 풍속이 잊혀져 가는 것도 있어 우리민족이 살아온 옛 생활을 중심으로 24 절기와 12 달 세시풍속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문헌과 민속박물관자료를 통하여 참모습의 풍속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조(李朝) 시대를 거쳐오며 가난과 한이 있었던 곳에서도 따듯한 정과 가르침 그리고 정직하고 순박한 인심이 아름다운 풍속이었고 자랑이고 민족 전통문화 였습니다.
지금의 세대들은 할아버지 시대를 잘 모르며 옛 풍속문화를 알지못한채 현대문명에 쓸려 가치를 잃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지난 그때 그 시절 다양한 삶의 모습을 현대풍속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풍속화로 그려보려 하였지만 이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풍속화 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 세대나 어린이들이 세시/절기 풍속화를 접하고 새삼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정월 (설날)
설은 한해의 첫날을 뜻하는 말이며 구정, 신정을 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려사에도 설날을
원정이라 하여 상원, 상사, 한식, 단오, 추석, 중구, 팔관, 동지와 함께 9대 속 절로 쓰여졌다. 고려왕은 정월에 천지신과
조상신 제사를 지냈고, 정월 초하루를 전후하여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 축하 예를 올렸으면 왕은 신하들에게 잔치을 베풀었다. 또 설이 시작되는 정월에 신라와 가야는 시조 묘에 제사하고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조선시대에 설은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다.
상자일(上子日)
음력 정월 첫번째 쥐의날 이다. 농촌에서는 저녁때 자기 밭두렁,논두렁에 다니면서 "쥐불이야, 쥐불이야'하며 풀을 태운다.
가래떡
설날의 대표적인 절식(계절음식)이다. 멥쌀을 충분히 불려 소금을 약간 넣고 절구에 빻아 고운 체로쳐 떡가루를 만든 다음, 시루에 베보자기를 깔고 쪄내어 안반에 놓고 떡메로 치거나 절구에 찧는다. 치거나 찧은 떡을 조금씩 떼내어 도마 위에 놓고 두 손바닥으로 길게 밀어서 가래떡을 만든다.
나비점 :음력 삼월 삼짇날 나비를 보고 점을치는 풍습으로 흰나비를 맨처음 보면 그 해에 상복을 입고,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보면 길한일이 생긴다 하였다. 나비는 행운과 부귀, 행복, 다산등 아름다움의 곤충으로 여겼다.
옛 선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여러 나비로 환생(還生)한다고 믿어왔다.
나비 를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비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사자가 나비로 환생 하였다는 설화는 아랑의 전설에서 지금도 전하고 있다.
한식 :묵은 불을 끄고 새 불로 밥을 지을 동안 찬밥을 먹는다 해서 붙은 명칭이 바로 한식이다.
청명과 관련된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가 있는데, 청명과 한식이 겹치거나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 쓴 속담이다.
청명, 한식때면 특히 오동나무를 내 나무라하여 아이 장성하여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심는다.
`청명(淸明) 한식(寒食)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따끔 따끔 가시나무/ 사시사철 사시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타령을 하며 특히 오동나무를 내 나무라하여 심는다.
그 때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한다.
연등절(燃燈節)
소회일(小會日:음력 1월 14일)과 대회일(大會日:음력 1월 15일)에 온나라백성들이 채붕(綵棚)을 설치하여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불을 밝히고, 과주(果酒)와 음악 ·가무(歌舞)로 대축연(大祝宴)을 베풀어 제불(諸佛)과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즐거움을 고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과 복을을 기원하던 제전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매년 대회일에 행하여 지다가 1010년(현종 1)부터는 음력 2월 15일로 변경하였다. 1352년(공민왕 1)부터는 4월 초파일에 궁중에서 연등회를 열어 궐내에서 100명의 승려에게 공양하였다.
조선 건국 초에도 연등회를 열었다. 연등하는 풍속은 신라 때의 팔관회(八關會)에서 유래, 계승되어 세시풍속으로 오늘날까지 전한다.
밤이 새도록 부처님께 축원과 소원을빌며 탑을 돌고 또 돈다.
탑돌이 :사월 초파일이면 각 가정과 절에서는 신도들이 등을 만들어 달고 불전(佛殿)에서는 큰 제를 올리는 한편 절의 마당에서는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기리며 각자 축원도 드리는 탑돌이를 10여가지가넘는 다양한 형태로 밤이 새도록 돈다.
처음 탑돌이가 시작될 때에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의 네 법악기만 사용하였으나 후에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 합쳐지고 보념(報念)과 백팔정진가(百八精進歌)를 부르게 되었다.
방생(放生) :옛부터 불교도들이 해마다 다른 사람들이 잡은 들짐승들이나 물고기따위를 사서 자연으로 살려 보내주는 방생계(放生契)라는 것을 조직하여 방생회(放生會)를 열어 오고 있다.
방생은 살생(殺生)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善行)이고 방생하는 것은 적극적인 선(善)을 행하는 일로 음력 3월3일이나 8월 보름에한다.
단오장(端午빔): 음력 5월 5일 단오날을 단오비음 이라고도 하며 1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성한 날이며, 악귀를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민속행사가 많다. 이날 부녀자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붉은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는다.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여자들은 창포뿌리로 만든 비녀를 머리에 꽂고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님으로써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또 비녀에 복 (福')이나 수(壽)의 글자를 새겨 복과 장수를 빌었으며, 비녀 끝에 연지를 발라 머리에 꽂으면 두통이 없어진다고도 믿었다.
삼복(三伏)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과 부스럼이 발병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침 창포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세수를 하거나 혹은 창포가 무성한 물가에서 목욕을 하였다.
널뛰기:음력 정월/ 단오/한가위/등 명절 때 부녀자들이 두껍고 긴 널빤지의 한가운데에 짚단 또는 가마니로 밑을 괴고 양 끝에 한 사람씩 마주 서서 번갈아 구르면서 즐기는 놀이로 초판희(超板戱)/판무(板舞)/도판희(跳板戱)/라고도 한다.
주로 설에 부녀자들이 많이 즐기는 놀 이이로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국각지방에 분포되어 부녀자들이 즐겨 한다. 널은 한 사람이 뛰어올랐다가 내리 디디면 그 힘의 반동으로 상대방이 뛰어오르게 된다. 이러한 동작을 서로 번갈아 하면서 놀이를 계속한다. 한쪽사람이 힘껏 굴러서 상대편의 발이 땅에 닿으면 다음 사람이 하게 된다. 이 놀이는 개인 또는 편으로 나뉘어 할 수도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담장 넘어 옥에 갇혀 있는 남편을 보려고 다른 죄인의 아내와 둘이서 널뛰기를 하면서 남편을 순간 순간 볼 수 있었다 한다. 또 여인들이 담장 밖의 풍경과 외간남자의 모습도 훔쳐보기도 하였다 한다.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년 내내 가시에 찔리지 않으며 처녀 때 널 뛰기를 하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속신(俗信)도 있다. 널뛸 때 안동지방에서 부르는 소리로 규중생장 우리 몸은/설 놀음이 널뛰기라/널뛰기를 마친 후에/떡국 놀이 가자 세라/(후렴으로)널뛰자 널뛰자/새해맞이 널뛰자. /가 있으며 지역마다 다른 널뛰기소리가 있다.
그네 : 그네는 추천(鞦韆)이라고도 하며 음력4월 초파일을 전후로 그네를 매어놓고 음력5월 단오절에 이르는 단옷날에 그네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는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등수를 결정짔는다
, 그네 앞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 위에 방울을 매달아 뛰는 사람이 방울을 울리도록 찬다 방울소리 는 크고 낮음의 도수로 등수나 승부를 결정한다. 그네는 혼자 뛰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올라서서 뛰는 쌍그네뛰기도 한다.
씨름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남자들은 자기의 힘과 기의 자랑을 하천의 넓은 사장이나 잔디밭에서 씨름으로 하였다.
승자에게는 부상(副賞)으로 황소 한 마리를 상으로 주었다. 황소를 주는 풍습은,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라는 뜻에서 황소를 부상으로 주었다.
떡 :단오날 망개나무(청미래덩굴 )잎으로 떡을 하여 망개떡이라 한다.
망개나무 잎의 특이한 향이 떡에 베어들면서 상큼한 맛이나고 한 여름에도 잘 쉬지 않는 특징을 갖이고 있다.
단오부채 :조선시대때 공조(工曹)에서 만들어 임금님께 진상한 부채를 단오날 관아와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서비들은 이부채에 시화(詩畵)를 그려넣고 기생 ·무당들은 버들개지 ·복사꽃 ·연꽃 ·나비 ·흰붕어 ·해오라기 등을 그렸다.
호남과 영남의 지방관(地方官) ·절도사는 특산품으로 절선(節扇)을 진상하였으며, 조신(朝臣)과 친지들에게도 선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격구 :격구에는 넓은 마당에서 하는 보행격구와 말을 타고하는 기마격구가있다.
보행격구는 넓은 마당에 구멍을 파놓고 공을 쳐서 구멍 안에 넣는 놀이인데, 아이들도 한다. 세종 때는 종친들을 궁내로 불러들여 보행격구를 하였고, 세조 때는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승부를 겨루었다. 임진왜란 이후 상류층에서는 볼 수 없었고, 서민들의 놀이로서 계승되었다. 또한 기마격구는 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 구문 밖으로 내보내는 놀이이다.
익모초(益母草)
익모초는 옛날부터 산후의 지혈과 복통, 혈압강하, 이뇨,진정, 진통등에 좋은 한방약재(韓方藥材)로 단오날 오시(오전11시~오후1시경)에 채취해야 약효가 가장좋아 포기 전체를 말려서 사용되어 왔다.또한 여름철에 익모초의 즙을 내서 먹으면 식욕이 생긴다하여 농가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봉선화 물들이기
봉선화(鳳仙花)는 붉은색·자주색·흰색·노란색·분홍색 등 여러 가지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핀다. 소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따서 백반(白礬)과 함께 으깨서 손톱에 물을 들이며 즐긴다. 이 풍습은 지금도 소녀들 사이에서 하고있다.
또한 익모초를 넣어 만든 약용주(약술)는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월경을 조절하고 혈독(血毒)을 해소시키는 효능이 있다. 또한 생식기능 저하로 인한 불임증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약쑥 :쑥은 한자로는 백호(百蒿)·봉애(蓬艾)·애초(艾草)·봉호(蓬蒿) 등으로 쓴다.
쑥도 익모초와 같이 약용으로는 단오날 오시(午時)에 채취하여 액(厄)을 쫓는 비방으로 쑥 다발을 대문 옆에 매달아 두기도하며 허리가 아플 때 찜질로,모깃불로, 쑥방망이로. 근래에는 대중 목욕탕에서 쑥탕으로 쓸 정도다.
약재로 쓰는 쑥은 예로부터 5월 단오에 채취하여 말린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복통·토사(吐瀉)·지혈제로 쓰고, 냉(冷)으로 인한 여성의 생리통 생리불순,대하에 효과가 있으며 습진과 피부 가려움증에 쑥달인물로 환부를 세척하면 좋다.
단오부적 :단옷날 잡귀를 쫓기 위해 부적을 만들어 붙였는데, 천중부적 또는 단오부적 이라고도 한다. 주로 귀신을 쫓는 내용을 붉은 글씨로 써서 방문 위에 붙인다. 붉은 글씨 대신 처용의 얼굴을 그린 부적을 붙이기도 하고, 복숭아 나무 가지를 매달아 놓기도한다.
삼복(伏):초복에서 말복까지의 기간은 일년 중 가장 더운 때이무로 이 때를 삼복(三伏)이라 하며,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 부른다.중복과 말복 사이에 때로는 20일 간격이 생겨, 이 경우를 월복(越伏)한다고 한다
복날을 흉일이라고 하여, 씨앗뿌리기, 여행, 혼사, 질병의 치료 등을 삼갔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피서하는 풍습이 있다.
모래찜질:초복에 모래가 쌓여있는 강이나 바닷가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모래구덩이에 목 위만 내놓고 전신을 1시간정도 뜨거운 모래에 묻고있으면 만성류머티즘,비만증,견통, 요통,신장병등에 좋다고 모래찜질을 하면서 한증으로 더위를 이겨내기도한다.
얼음: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지체높은 관원들에게 삼복 더위를 피하게 1개의 동빙고를 한강하류 두모포 (豆毛浦)에 두어 국가 제사때 사옹하였으며 8개의 서빙고를두어 왕실의 주방용과 관원들에게 배급용으로 사용하였다.
이미 6세기초 신라에서는 석빙고라 하여 땅속깊이 굴을파고 내벽을 돌로쌓아서 얼음이 녹지않게 특수한 방법으로 저장하였다.
목욕:'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다. 고로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복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한다.그래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탁족(濯足):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속절(俗節)이다. 삼복더위를 피해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시원한 물이 흐르는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며 하루를 즐긴다.
유둣날(음력 6월 15일)
유두는'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며 이날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은 양기가 왕성하여 목욕과 머리를 감으면 상서롭지 못한 것이 모두 씻어지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신이다.
유두연(流頭宴)
유두 무렵에는 햇과일인 수박과 참외를따 유두천신(流頭薦新)한후 선비들은 과일과 주안을 장만하여 시원한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가서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긴다.
유두절식
유둣날 음식으로는 증편, 편수, 상화병, 유두면, 보리수단, 맨드라미전, 호박밀전, 상추쌈, 참외, 등이 있는데 특히 유두면을 먹으면 장수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액막이로 밀가루 구슬에 오색물을 들여 3개씩 포갠 다음 색실로 꿰어 허리에 차거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 풍습도 있었다.
물맞이
음력 6월 15일 유두날 동쪽으로 흐으는 물은 양기가 가장 세어 등목을하거나 폭포밑에서 온몸에 물을 맞거나 머리를감고 목욕을하면 더위와질병이 생기지않아 여름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한다.
고려 때 경주에서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술을 마셨고 조선 순조때도 물맞이를한 풍속이 있다.
전답제(田畓祭)
농촌에서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날에 밀가루 떡과, 참외 또는 긴 생선(주로 북어) 등을 마련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신(農神)에게 농작물이 잘 자라 풍년이 들게 기원하는 제(祭)다.
김매기춤
농요(김포지방)는 모심기와 김매기할 때 두레를 구성하여 부르는데, 김매기는 호미를 가지고 한다. 다른 지방에 비하여 무용적 요소가 있으며, 다 함께 움직임을 맞추어 일할 수 있게 노래를 따라부는 소리춤이다.
처음에는 느릿 느릿한 가락으로 하다 흥겨운 방아타령을 거쳐 좀 빠른 중중모리인 상사디야로 이어지고 휘모리 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춤은 논두렁에 모여 오른쪽 으로 김매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호미를 가지고 왼쪽 앞, 중앙 앞, 오른쪽 앞 등허리를 굽혀 김매기를하다가 마지막에는 양손을 오른쪽 옆으로 올리고 흙을 엎어누르는 흉내를 내면서 양손을 밑으로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오른쪽방향으로 추던 춤을 한 사람씩 뒤로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왼쪽 앞, 중앙 앞, 오른쪽 앞 등 순으로 김매기를 한다.
마지막에는 양손을 오른쪽 옆으로 올리고 밑으로 누르는 동작을 한다. 전원이 같은 방향으로춤을 추다가 원형이 좁아지면서 김매기가 모두 끝나면 손을 들어 외치며 춤을 끝낸다.
백중 :음력 7월 보름을 백종일(百種日)·망혼일(亡魂日)·중원(中元)이라고도 하며 이날 남녀가 함께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놓고 즐겁게 논다. 지방에 따라서는 백중장(난장)이 서고 씨름, 장치기(手傳) 등의 놀이를 하였다. 한편 각 사찰에서는 승려들이 백중재(齋)를 올린다
호사:머슴을 둔 집에서는 백중날 하루를 편히 쉬게 하며 취흥에 젖게 하기도하고. 머슴에게 새옷 한벌과 용돈을 준다. 또 그 해에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황소에 태우거나 가마에 태워 위로하기도 한다.
칠석:음력 7월 7일 칠석날 은하수의 동쪽 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서쪽의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1번 만난다고 하는 전설로
까치와 까마귀를 한 마리도 볼수가 없다는데 어쩌다 있는것은 병이들어 오작교를 놓는데 참여하지 못한것이라 한다.칠석날 저녁에 비가내리면 견우와직녀가 만난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오면 이별의 눈물이라 한다.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줄어들고 장마도 대개 끝난 시기이나, 이때 내리는 비를 칠석물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호박이 잘 열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때이므로 민간에서는 호박부침을 만들어 칠성님께 빌었다
전설에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사랑을 속삭이다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을 사서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쫒겨나 서로 만날수 없게된다.견우와 직녀의 딱한 이 사정을 알고 지상에있는 까치와까마귀가 해마다 칠석날 하늘로 올라가 몸을잇대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준다.이 다리를 오작교라한다.
견우와직녀는 오작교를 건너 1년만에 기쁨의 만남을 갖는다.허나 안타깝게도 사랑의 회포를 풀기도전에 새벽닭이 울고 동쪽하늘이 다시밝아 이별을 하지않으면 안된다.
직녀는 또다시 서쪽으로가 베를짜고 견우는 동쪽으로가 밭을 갈면서 각기 은하수를 사이에두고 안타깝게도 또다시 다음 칠석날을 기다려야한다.
칠석 :음력 7월 7일 칠석날 은하수의 동쪽 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서쪽의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1번 만난다고 하는 전설로
까치와 까마귀를 한 마리도 볼수가 없다는데 어쩌다 있는것은 병이들어 오작교를 놓는데 참여하지 못한것이라 한다.칠석날 저녁에 비가내리면 견우와직녀가 만난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오면 이별의 눈물이라 한다.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줄어들고 장마도 대개 끝난 시기이나, 이때 내리는 비를 칠석물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호박이 잘 열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때이므로 민간에서는 호박부침을 만들어 칠성님께 빌었다
전설에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사랑을 속삭이다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을 사서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쫒겨나 서로 만날수 없게된다.견우와 직녀의 딱한 이 사정을 알고 지상에있는 까치와까마귀가 해마다 칠석날 하늘로 올라가 몸을잇대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준다.이 다리를 오작교라한다.
견우와직녀는 오작교를 건너 1년만에 기쁨의 만남을 갖는다.허나 안타깝게도 사랑의 회포를 풀기도전에 새벽닭이 울고 동쪽하늘이 다시밝아 이별을 하지않으면 안된다.
직녀는 또다시 서쪽으로가 베를짜고 견우는 동쪽으로가 밭을 갈면서 각기 은하수를 사이에두고 안타깝게도 또다시 다음 칠석날을 기다려야한다.
빗물 :칠석날(음력7월 7일) 내리는 빗물은 땀띠와 부스럼 등에 좋은 약물이 된다고 하여 집집마다 이 빗물을 받아서 온 식구가 목욕을 하였다. 또한 칠석날을 기하여 산간계곡과 약수터, 폭포 등을 찾아가서 목욕하는 풍속이 있었다.
정한수(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세 자매는 하늘에서 길쌈을 관장하는 직녀성에 바느질과 길쌈질 솜씨가 뛰어나게 해달라고 정성스리 소원을 빌고 또 빈다.
직녀의 기쁨의 눈물인지 이별의 눈물인지? 빗물로 목욕을 한다.
쉬~/땀띠야 !/ 직녀 따라 가거라/부스럼아 !/ 견우따라 가거라..... "
기원(걸교) :칠석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부녀자들이 길쌈을 뛰어나게 잘 할수 있도록 직녀성에게 비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부녀자들은 참외,수박,오이 등을 차려 놓고 길쌈질이 늘기를 빈다. 얼마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있는직녀성이 소원을 들어주었으므로 길쌈질이 늘것이라고 기뻐한다.
또한 장독대 위에 정화수(정한수)와고운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재주가 있게 해 달라고 빈다. 다음날 재 위에 어떤 흔적이 있으면 이또한 직녀성이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속은 직녀성이 하늘에서 길쌈과 바느질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기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농가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 놓는 지방도 있음)를 올려놓고 가족의 무병 장수와 집안의 안녕을 기원 했다.
포쇄 :음력 7월 7일(칠석))에 선비는 눅눅해진 책들을 말리고(士曝書) 농부는 곡식을 말리며(農曝麥) 부녀자는 옷을말린다.(女曝衣)
책은 한지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오래도록 보관할경우 습기에 약하여 썩거나 벌레가 먹게되 정기적인 포쇄가 필요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칠석날 옷을 햇볕에 말리는 풍속이있다 하였고,고려때 공민왕과 우왕때 포쇄에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났으며.조선시대 실록포쇄형지안(實錄曝쇄形止案)에는 포쇄가 봄 가을로 매우 엄격하게 사관(史官)을 파견하여 실시하였다. 라고 기록 되어있다
가배(嘉俳)
가배(嘉俳) 중추절(仲秋節)·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것은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 조에 왕이 신라를 6부로 정하여 왕녀 두사람이 각부의 여자들을 두패로 편을짜서 7월 16일부터 매일 길쌈을 하였다. 음력 8월 15일에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어 승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고려시대때 동동노래에도 이 날을 가배라 실려 있음으로 보아 이 명칭은 오늘날 까지 불러지고 있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를 가락국에서 나왔다고도 하였다.이처럼 가윗날은 우리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한다
송편 빚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송편·시루떡·인절미·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그중 송편은 대표적인 추석 음식으로 한해의 수학을 감사하며 조상의 차례상에 바쳤다.
햇곡식으로 송편을 예쁘게 잘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아녀자들은 예쁜 손자국을 내며 반달 모양의 송편에 꿀·밤·깨·콩 등의소를 넣는다. 이때 솔잎을 깔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 향기와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강강술래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마을 부녀자들 수십명이 넓은 마당에 모여 둥굴게 서로 손을잡고서,목청이 좋은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산아 산아 추영산아/ 놀기 좋다 유달산아/ 하고 앞소리를 부르면, 놀이를하는 부녀자들은 강강술래/ 강강술래/를 뒷소리로 받아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길쌈 :주로 가정에서 섬유 원료로 베 ·명주 ·모시 ·무명 등의 피륙을 짜내기 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한다.
목화를 원료로 하는 무명을 제외한 베 ·명주 ·모시 등의 길쌈은 동이전 예조(東夷傳濊條)에 “삼을 심고 누에를 길러 옷감을 짰다(知種麻養蠶作綿布)”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길쌈은 농업과 더불어 농가의 중요한 수공업의 소득원이 되었으며, 관업(官業)으로까지 발전하여, 신라에서는 마전(麻典) ·조하방(朝霞房)과 같은 관영 직조소를 설치하였다. 또한 길쌈 잘하는 여직공과 감독하는 모(母)를 두어 베는 물론 고급비단도 생산하였다.
길쌈을 장려하기 위하여 해마다 7월 15일부터 서울 안의 여자를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 내기를 하여 한 달만인 한가위날에 승부를 가렸다
거북놀이 :짚이나 수숫대로 거북처럼 만들어 (앞에 1명, 뒤에 1명) 집집마다 찾아 다니면서 노는 놀이이다.거북 앞에는 모리꾼이 거북의 목에 줄을 매어 끌고 그 뒤에는 농악대가 꽹과리 ·북 ·소고 ·징 ·장구 등을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비교적 부유한 집 대문 앞에서 거북몰이가 “ 동해 거북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면, 주인이 나와서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한다.그리고 그 집 마당에서 한바탕 춤을 추면서 논다.
이 때 꽹과리 치는 사람이 “거북아 거북아 놀아라/만석 거북아 놀아라/천석 거북아 놀아라/이 집에 사는 사람 무병장수 하사이다/이 마을에 사는 사람 무병장수 하사이다/”라고 축복의 주사(呪詞)를 부르는데,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꽹과리를 친다.
이렇게 한바탕 놀다가 거북이 땅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거북몰이가 ‘쉬이’ 하고 손을 저어 춤과 음악을 중단시키고 주인을 향하여, “이 거북이 동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오느라고 지쳐 누웠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 한다.
주인집에서는 떡 ·과일 ·술등을 푸짐하게 차려 낸다.. 일행은 음식을 먹은 뒤, 잠시 쉬었다가 거북몰이가 거북을 보고, “거북아, 음식도 먹었으니 인사나 하고 가자” 하면, 거북이 집주인을 향하여 넓죽 절을 한 후 한바탕 뛰어놀다가 다른 집으로 간다.
속절(俗節)
제삿날 외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의묘에 차례를 지내던 날을 속절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계절이 바뀔때마다 한 차례씩 성묘를하는 습속이 있었다
오늘날 생활의 변화로 속절을 지키기가 어려워졌으나 큰 명절인 설날(음력 1월1일), 추석날(음력 8월 15일), 한식날(양력4월 5.6일경)만은 반드시 성묘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남아 있다. 특히 한식날은 산소를 돌보고 떼를 입히거나 성묘를 한다.
<제사상 차리기>
가가례(家家禮)에 따라 제물로 메·탕·채소·간장·과실·제주·갱수·시접·모사·위패·향로 그리고 촛대 등이며.진설은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 / 생선(해물)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포는 서쪽에 혜는 동쪽에 / 동쪽에서부터 대추·밤·배·감의 순으로 진설한다.
반보기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시집간 딸을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수 없었다. 그래서 농한기인 추석을 전후하여 어머니와 딸이, 또는 안사돈끼리 만나고자하는 날자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제각기 음식과 선물 또는 토산품을 가지고 양편 집의 중간쯤되는 적당한 곳에서 만나 가지고온 음식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로 하루를 즐겼다.
차례(茶禮)
차례는 명절에지내는 속절제(俗節祭)로 차례 자체도 지방에 따라 다르며 대개 설날(정월 초하룻날)과 추석에만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옛날에는 정초에 차례를 지낼 때 ‘밤중제사(또는 중반제사)’로 섣달 그믐날 밤 종가(宗家)에서 제물과 떡국을 차려놓고 재배(再拜) ·헌작(獻酌) ·재배한 다음, 초하룻날 아침에 다시 차남 이하 모든 자손이 모여 메를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4대의 조상을 모셨으나 지금은 조부모 ·부모 2대만 차레를 지낸다.)
제사는 먼저 장자(長子)가 재배하고 헌작한 다음 메를 올린다. 올린 메에 수저로 十자의 자국을 낸 다음 45 ° 각도로 꽂고 일동이 재배한다.
국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 다음 숭늉에 밥 3숟가락을 만다. 메에 뚜껑을 덮은 다음 차남이 아헌(亞獻)하고 3남이 첨작한 후 일동 재배하는 것으로 차레는끝난다.
벌초 :옛날 조상들은 명당자리를 찾아 수 십리 또는 수백리밖의 먼 곳에 까지 찾아가서 묘를 썼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음력 8월이되면 벌초는 자손들의 몫으로 하였다.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한 묘는 보기에 흉할뿐 아니라 페묘가 된다.그래서 사람들은 한가위에 앞서 벌초를 당연시한다.지방에 따라서는 백중날(음력 7월 15일) 산소에 벌초를하고 성묘도 한다.
제비 :음력 9월 9일은 9월중의 유일한 속절이며 중양(重陽) ,중광(重光)이라고도한다. 제비는 중양절에 강남으로 갔다가 3월 3일 삼짇날에 다시 돌아온다. 이와 같이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하여 민가에서는 길조(吉鳥)로 여겼다.
과거(科擧) :과거는 관리 등용의 자격 시험 제도를 말한다.즉 분과 고시(分科考試)의 통칭으로 제과(諸科)로서 통용된다.
삼국(신라,백제,고구려) 시대 이전에는 과거제도가 없었는데, 고려 광종 9년(958)에 비로소 실시하여 조선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때 까지 계속하였다.
구절초 :높이 50cm 정도로 땅속뿌리가 옆으로 길게 뻗으면서 산기슭이나 들에서 자란다.모양은 산구절초와 비슷하며 꽃을 술에담가 먹는다.중양절때 구절초는약효가 가장 좋다하여 뜯는다.한방과 민가에서는 말린 구절초를 치풍·부인병 위장병에 처방한다. 유사종인 산구절초·바위구절등도 약재로 쓴다.
투호(投壺) :투호 놀이는 고려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재예(才藝)로 행하였다. 잔디밭이나 넓은 마당,·대청 등에 청동 항아리(병)를 놓고 여러 사람이 양쪽으로 편을 갈라 좀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항아리 속에 던저서 많이 넣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이때 풍악이 울리며 무희들이 춤을 추며 잔치가 벌어진다. 궁중에서 왕족들이 투호를 할 때에는 임금이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국화전 :중양절의 특별한 시절 음식으로 햇과일 (배, 유자. 석류, 잣))을 썰어 꿀물에 탄것을 화채라하여 제사에도 올린다.또한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과 국화전을 부쳐먹는데 국화전은 삼짇날 진달래로 화전을 만드는것과 같다.
오늘날의 국화떡은 이때 비롯된 것이다.아녀자들은 민가에서 무리지어 전을 부쳐 먹으며 하루를 즐긴다.
고사(10월 상달 고사) :그 집안의 주부가 제주가되여 가족의 평안과 액막이를 빌고 풍요를기원하며 음력 시월달에 집의신(家神)에게 지내는 제사로고삿날 제주는 몸을 깨끗이하고 부정 탄다하여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새끼줄에 솔가지를 꽂아 대문에치고 깨끗한 황토를 뿌린다.
조상신은 집 주인 방에, 터주신은 마당에, 성주신은 대청에, 조왕신은 부엌에, 삼신신은 주부가 거처하는 방에 잡신은 광등에 각각 있으므로 떡시루와 정한수 과일 나물등을 차려 주부가 또는 무당을 불러 빈다.
종계 (10월 상달 종계)
상달 시제를 앞두고 문중의 계가 있는 날이다
제전에 나오는 수익과 약간의 곡물을 추렴하여 제물을 마련코자 회의를 한다.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1년에 한번 제사를 지낸다. 이를 시제(時祭)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4대조까지는 망일에 기제(忌祭)를 지내며 설, 추석, 같은 명절에는 차례와 성묘를한다.)
시제는 반드시 묘소에서 지내며. 이때는 멀고 가까운 후손들이 모여 성대하게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시제를 위한 비용은 문중에 따라 다르다.일반적으로 종계(宗契), 문계(門契)에서 관리하는 제전(祭田),이나 신위마다 제위토를 마련하여 그 수익으로 비용에 충당하하는것이 상례이다.
속신(10월 상달 속신)
속신은 민가에서 행해지는 관습적 신앙으로 식전에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 /처서에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꿈에 윗니가 빠지면 웃어른이 돌아가신다/ 등은 ‘점복’의속신이며 갓난아기를 무겁다고 하면 살이 빠진다/ 한밤에 거울을 보면 소박을 맞는다/ 등은 금기속신이다
임부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기의 손발이 붙는다/.묵(도토리 메물)을 먹으면 유산한다/등은 유감주술적(類感呪術的)인속신이다. 다듬잇돌을 비고자면 입이 비뚤어진다/한 대야물로 세수하면 싸운다/ 등은 제약으로 위생적 과학적 합리성의 속신이다
밤에 손톱 발톱을 깎으면 복이 달아난다/ 밥먹을때 소리내어 먹으면 복이나간다/등은 남이 싫어하는 것을 막는 속신이다.
난로회(10월 상달 난로회)
음력10월 상달인,입동(立冬),소설(小雪)을 전후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겨울 추위를 막는 시절음식으로 번철(燔鐵)에올려 쇠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풍속이다.
또 쇠고기·돼지고기·무·외·훈채·계란을 섞어서 장탕(醬湯)을 만드는데, 이것을 열구자신선로 (悅口子神仙爐)라 하였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10월 초하루에 유사(有詞)들이 난로와 술을 올리라고 하면 민가에서는 모두 술들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를 했다
손돌바람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가던길에 배가 통진(通津)·강화 사이(후에 손돌목이라 하였다)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거세게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왕에게 안전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파천하는 길이라 의심스러워 그를 반역죄로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더욱 위태롭게 되었다. 왕이 타고가던 말을 목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위로하고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뒤 매년 이날이 되면 광풍이 분다하여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손돌추위
절기로 소설(小雪) 무렵으로 대개 음력 10월 20일 경에는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춥다.
이날 손돌이 뱃길을 열어준 죄로 억울하게 죽음을당해 매년 이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분다하여 이때의 추위를 손돌 추위라 한다.지금도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때문에 춥다고 한다.
용(龍)(11월 동짓날)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실려 전하는 농사와 관련된 전설이다.
동지(冬至) 무렵에 경북 함창의 공검지(恭儉池), 경남 밀양의 남지(南池), 충남 당진의 합덕지(合德池), 연안(延安)의 남대지(南大池) 등 못(池)에 얼음이 얼면 극젱이(쟁기와 비슷한 농기구)로 밭을 갈아 놓은 듯한 모양으로 언다. 농가에서는 용의 소행이라 믿는다.
밭을 갈아놓은 모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갈아나간 것이면 풍년이고, 서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흉년이며, 동서남북으로 엇갈려 있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점쳤다.
역귀(疫鬼)
11월 동짓달에 동지는 다음해가 되는 날로 아세(亞歲)또는 작은설 이라하여 종교적으로 혹은 풍속적으로 큰 축제로 삼았다.또 동짓날은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데, 시식(時食)을 삼아 고사(告祀)도 하고, 또 역귀를 막는다 하여 팥죽의 붉은 국물을 대문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제석(除夕)(12월)
예로부터 민가에서는 한 해를 마치는 날로 제야(除夜)라하여 한 해동안 일들을 뒤돌아 보며 등불을 밝히고 새해를 준비한다.
가깝던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는 일로 밤중까지 분주하며 밤샘도 한다.특히 모든 사람과의 부채 관계는 섣달 그믐 날에모두 청산하나 그중 빚을 다받지못한 사람은 자정(子正)이 지나면 정월 보름까지는 빚을 독촉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절기로 동짓날도 같은 풍습이 있었다)
조선 시대 궐내(闕內)에서는 이날 밤 연종포(年終砲)와 화전(火箭)을쏘고 징을 울렸으며 악귀를 쫓는 나례(儺禮)를 베풀었다.또한 2품 이상의 조관(朝官)들은 왕을 뵙고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
세찬 :집안이 아무리 가난 하더라도 이날만은 길게 손으로 뽑아낸 흰가래떡으로 떡국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린뒤, 온 집안 식구가 둘러 앉아 떡국을 먹는다.
중부 이북에서는 꿩고기·숙주나물 두부 버 섯김치 등을 넣어 만든 만두를 별미로 떡국에 넣기도 한다. 친척이나 사돈 또는 친한 이웃 간에는 새해를 맞아 서로 복을 비는 인사의 뜻으로 생닭·생선 육포·건어물·귤·곶감·세주 등을 주고 받기도 하였는데, 지금도 이러한 풍속이 남아 있다.
묵은 세배(舊歲拜) :음력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이라 하여 어른들에게 송년 인사와 축원을 드린다. 이해도 무사히 잘 보냈다는 의미이며,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도 한다.또한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여 묵은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신성하게 새해를 맞이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묵은세배를 하느라고 이날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초롱불을 든 세배꾼들이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수세(守歲) :해(年)지킴 또는 별세(別歲)라고도 하여 그믐날밤에 방,뜰,부엌,곳간,장독대,변소 할것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잡귀의 출입을 막기위해 등촉을 밝혀 놓는다. 이날 잠을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하여 첫 닭이 울때까지 윷놀이를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하며 밤을 샌다.또한 한해가 마지막 가는 밤이니 집에서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다먹으며,바느질하던 것도 해를 넘기지 않게 한다.
세주(歲酒) : 옛부터 민가에서는 그믐이 되면 설날 차례상에 올릴 동동주나 약술 등 집안마다 특색있는 술을 담근다.
정초 준비한 세찬(歲饌)과 함께 제사에 올리는 술과 마시는 술을 보통 세주(歲酒)라한다.설날 아침에는 나이가 적은 사람부터 돌려가며 세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보통 약주와 청주가 많이 쓰인다.
술은 집안마다 전통과 특색이 있어서 자기 집안의 술맛을 자랑하기위해 친지를 청하고 방문하여 마시기도한다.
류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세주불온우영춘지의(歲酒不溫寓迎春之意)라했다.즉 세주는 데우지않고 마시는데 이에는 봄을 맞이 한다는 뜻이 들어있고 데우지않은 찬술을 마심으로써 정신을 맑게 한다는 뜻도 된다.
윤달 :윤달은 '썩은 달'이라고 하여,하늘과 땅의 모든신(神)이 쉬는 달이다. 인간이 신에대해 어떤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여도 신의 노여움과 벌을 피할수 있다고 믿어 윤달에는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壽衣)를 하는 풍습이 전해저 내려왔다
수의짓기 :윤달은 음력에서 역일(曆일)이 계절과 너무 맞지 않아 이것을 막기위해 끼워준 달로 빈(空)달이다.액이될 일을 하여도 탈이없는 달로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은 삼베로 짓는다.노모를 모신 집에서는 이때 수의를 지어 놓는다.
성돌기 :성 밟기라고도 한다.
윤달에 주로 부녀자들이 성터에 올라 성을따라 줄을 지어 도는 중부 이남에 전하는 풍습이다. 성 밟기를하면 극락세계에 갈수 있다는 불교적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이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내어놓고 함께 즐긴다.
전라북도 고창 지방에서는 주로 아낙네들이 열을지어 모양성(牟陽城)을 3번 도는데, 머리에 돌을 이고 도는 것이 특색이다.
이렇게 하면 액운(厄運)을 면하고 장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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