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 이달 [1539(중종34년)~1618(광해군10년)]의
자는 익지, 호는 동리, 서담, 손곡등이 있고, 본관은 홍주 이씨이다.
쌍매당 이첨의 후손으로 아버지 이수함과 홍주(지금의 홍성)관기 사이에서
강원도 원주시 손곡리에서 서출로 출생한다.
삼당시인(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 손곡 이달)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며 이들과 전라도
지방에 모여 시를 짓기도 했으며, 임제, 허봉,양대박 등과 어울리기도 했다.
서출이란 신분 때문에 관직에도 등용되지 못했던 그는 전국을 돌아 다니며 주유한다.
자신의 출신에서 온 불안과 울분을 시로서 승화시키며 방랑 시인으로서 삶을 살다가
자식도 없이, 특별한 직업도 없이 평양여관에서 제자인 허균이 반역죄로 참형 당하던
해인 1618년(광해군10년)57세로 한많은 생을 마친다.
손곡의 제자인 허균은 서자 출신이었던 스승 이달의 생을 동기삼아 "홍길동전"을 저술함.
대추따는 노래 이웃집 꼬마가 대추 따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쫒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때는 살지도 못할걸요. |
불일암 인운스님에게 절은 흰구름 가운데 있는데 흰구름은 중은 쓸지 않네 손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여니 온 골짜기에 송화가루 날리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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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요 시골집 젋은 아낙이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보리베어 수풀속을 지나 돌아오네 생섶은 습기 머금어 불도 붙지 않고 문에 들어서니 어린딸은 옷을 끌며 우는구나 |
어느곳이 그대 집이던가 서울에 떠도는 나그네요 그름낀 산 어느곳이 그대 집이던가 가냘픈 연기가 대숲길에 피어 오르고 보슬비에 등꽃이 지는 그곳이라오 |
그대를 보내고 오월이라 앵두가 익고 산마다 소쩍새가 우네 그대를 보내고 부질없이 눈물 흐르는데 꽃과 풀들은 저마다 무성키만 해라 |
50년 세월을 뒤돌아 보면서 쓴시 (인간만사불여의) 인간 세상만사가 뜻같지 않아 (득실유유간새웅) 득실을 유유히 새옹지마로 여기네 (호월루대환유병) 누대에 달 밝으면 다시 병이 있고 (낙화시절매다풍) 꽃지는 호시절엔 늘상 바람이 많지 (당래헌면허무이) 홀연히 높은벼슬 허무속에 들고 (과거영웅적막중) 지난날 영웅들 적막속에 잠기네 (오십일년하소용) 51년 세월을 어디에 허비했던고 (일성장소망요공) 길게 휘파람 불며 먼 허공을 바라보네 |
다음은 손곡과 추사 김정희가 죽은 아내를 애도하며 지은 시다.
손곡의 시중에 개인적으로 젤 마음에 와 닿는 시이며아내가 없는 텅빈 집안의 풍경이
고스란히 그려지며손곡의 쓸쓸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다.
손곡 이달의 도망(悼亡) (나위향진경생진) 방장엔 향내 사라지고 거울에 먼지 가득한데 (문엄도화적막춘) 문은 닫히고 복사꽃 피어나 봄은 더욱 쓸쓸하구나 (의구소루명월재) 작은 누각엔 옛날처럼 달이 밝은데 (부지수시권렴인) 누가 있어 저 주렴 걷을 것인고 추사 김정희의 도망(悼亡) (나장월로송명사) 나중에 저승엘 가서 월하노인과 송사를 해서라도 (래세부처역지위) 다음 세상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놓으리라 (아사군생천리외)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밖에 살아있어 (사군지아차심비) 그대로 하여금 지금의 이 애통한 마음을 절감케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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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라서 월하노인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리에 나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하는
추사 김정희의 悼亡이 손곡의 悼亡보다 더 슬픔으로 와 닿는다.
월하노인에 대한 전설(진서 예술전과 속유괴록에 나오는 이야기)
월하노인은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사랑신이다, 수나라가 망하고,
세워진 당나라 초기 정관 2년(630년대 추정))에 위고라는 청년이 여러곳을 여행하던 중에
송성(지금의 허난성)에 이르러 어 허름한 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휘영청 달빛아래 한노인(월하노인)이 자루에 기대어 앉아 커다란 책윽 뒤적이고 있엇다.
위고가 물었다. "무슨책을 보고 계십니까?" "이것은 세상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자루안에 있는 빨간 끈으로 묶어 놓으면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그럼 제
배필은 어디 있습니까?" "송성에 있네.북쪽에 채소파는 노파가 안고 있는 아이가 바로 짝이네."
그러나 위고는 참 이상한 노인이라고만 생각하고 대수롭게 넘겼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위고는 상주의 관리가 되어 그 고을의 태수의 딸고 결혼하였다.
17세의 부인은 아리따웠다.어느날 문득 예전 생각이 나 부인에게 월하노인 얘기를 해 주었다.
부인이 깜짝 놀라면서 하는말이 "저는 사실 태수의 친딸이 아니고, 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하다가
돌아가셨고, 유모가 채소장수를 하면서 길러 주었는데, 지금의 태수가 아이가 없자 저를 양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중매인을 月下노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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