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 : 벽송사는 460년전 전북 부안군 송씨 가문에서 태어난 송지암 이 득도하기전 십년간 광주리를 만들어었다고 벽송사가 있는 마을을 광주리점이라고 한다.송지암은 10세전에 사서삼경을 읽었고, 20세에 무과에 장원급제 하여 장군으로 변방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지만 격전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허망함을 느끼고 계룡산으로 들어가 불교수행을 한다. 용문산,오대산,백운산 등지를 거치면서 수도를 하던중 법계정심대사를 찾아 지리산에 입산한것이 57세 되던해 그무렵 법계대사는 이조 조정의 척불의 화를 피해 싸리나무 광주리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허구헌날 송지암에게 광주리 만드는 일만 시킬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송지암은 떠나겠다고 했다."가고 오는 것은 자유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말씀을 듣고 하산하다가 그 말을 되새기며 되돌아와 법계대사 앞에서 무릎을 끊고 경솔함을 사죄하다 득도한다. 벽송대사가 득도한지 3개월후 법계정심대사는 열반에 들게 된다.그후 벽송이 많은 제자들의 마음밭에 법비를 내린다.
벽송사가 있는 마을을 광주리점,강아리점이라고 한다.송지암 스님이 득도하기전 십년간 광주리를 만들어 팔던곳이라 유래된 이름이다.송지암은 전북 부안군 송씨 가문에서 태어났다.10세전에 사서삼경을 읽었고, 20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장군으로 변방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지만, 격전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허망함을 느끼고 계룡산으로 들어가 불교수행을 한다.용문산,오대산,백운산 등지를 거치면서수도를 하던중 법계정심대사를 찾아 지리산에 입산한것이 57세 되던해 그무렵 법계정심대사는 이조 조정의 척불의 화를 피해 싸리나무 광주리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허구헌날 송지암에게 광주리 만드는 일만 시킬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송지암은 떠나겠다고 했다."가고 오는 것은 자유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말씀을 듣고 하산하다가 그말을 되새기며 되돌아와 법계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솔함을 사죄하다 득도한다.벽송대사기 득도한지 3개월 후 법계대사는 열반에 들게 된다. 그후 벽송이 많은 제자들의 마음밭에 법비를 내린다.
벽송사 도인송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꼽아 놓고 500년 뒤에 돌아 오겠다고 말하고 열반하였다. 주장자는 소나무가 되었고, 이후부터 도인송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인송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환성지안 선사를 남몰래 연모하던 부용이라는 낭자가 스님이 돌아가시자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벽송사에서 스님의 정녕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이었다. 이후 항상 소나무엔 학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고 전해지고, 미인송이란 이름도 이때 얻었다고 한다.
벽송사는 1520년(중종15) 벽송지엄대사가 중창
1950년 육이오로 인해 불타 소실되엇으나 재중건한것이 현재의 모습이다벽송사 들어가는 입구에 나무 장승이 있는데,왼쪽장승은 금호장군, 오른쪽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한다.두 장승은 사천왕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 억할을 하고 있다. 절입구에 세워진 목장승중 여자장승은 꼭다문 합죽이 입과 옴폭한 보조개 ,불에 탄머리 남자장승은 짱구 왕방울 눈알,얼굴 절반크기의 우뚝한 코, 참나무 조각 얼굴은 소박하면서도 질퍽하고 위압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신재효의 판소리 열두마당 "가루지기"(변강쇠 타령)에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고 따뜻한 방에서 옹녀와 놀아나자, 함양 장승신은 한양 노량진의 우두머리 장승신을 찾아간다 우두머리 장승은 팔도의 수만 장승을 모이게 한다.결국 변강쇠는 팔백가지 병을 얻어 함양 땅에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
벽송사 삼층석탑
벽송사 삼층석탑은 이단의 기단위에 장방형의 삼층탑신을 세운 통일 신라시대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탑이다.벽송사의 창건 연대가 중종15년(1520)으로 미루어 볼때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양식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이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 돌의 네모서리가 면의 가운데 기둥모양 얕게 조각하였는데 특이한점은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 사이에 높직하게 딴돌을 끼워 놓은것이다. 위층 기단의 맨 윗돌은 한장의 넓은돌로 이루어졌으며 밑에는 수평으로 앏은단을 새겨 놓았다. 탑신부에 몸돌은 각층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지붕돌은 추녀가 얇고 반듯하며 마무리 부분에서 치켜오른 정도가 완만함을 알수 있다. 하지만 지붕들 윗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치켜올림의 정도도 심하게 보이는 것 또한 이 탑의 특징이다.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과 노방만 남아 있어 허전함을 보여주고 세월에 의해 훼손되었음을 알수가 있다.
서암; 사천왕은 자연 바위에 나란히 조각해 놓음. 무지개 같은 대방광문으로 들어서면 한옥같은 미타전"대방광문"이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협곡같은 입구 따라 몇걸음만 더 가면 화엄의 세계로 들어선다. 주변이 온통 큼직한 바위로 이루어진 곳에 보이는 한옥건물 여염집 사랑채 같은 그런 한옥 건물 벽이" 방하제연"이란팻말. "아직 버리지 못한 세속,근심,미련과 시기심을 떨구라"는 의미..미타전 편액이 붙은 한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극락전 굴법당으로 들어가면 자연동굴 바위벽과 천장 사방에 온통 부처님과 불보살을 조각해 놓음. 굴법당 극락전은 환희심이 넘칠정도로 굴전체가 섬세한 조각작품으로...아미타 부처님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그리고 8대보살 빈틈없이 조각으로 매운 바위굴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결정판이라 할수 있다.
용유담; 휴천면과 마천면 경계지점에 용유담이 있다. 물살이 쉬엄쉬엄 흐른다고 휴천,물살이 말달리듯 흐른다고 마천, 휴천과 마천이 장구한 세월동안 빚어놓은 용유담
거북바위를 비롯해 수많은 바위들은 신이 빚어낸 조각 예술인듯 아름다움의 극치다. 용이 사는 곳이라 하여 남명 조식 선생은 살아 생전 3번이나 용유담을 찾았다고 한다.
지리산 북쪽에서 흐르는 물과 전북 운봉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서 엄천강을 이루어 산청을 흘러 진주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용유담은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재직시 기우제를 지냈던곳이기도 하다.
옛날 마적도사가 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 보내면 그 나귀가 엄천사로 가서 식료품과 생활 필수품을 싣고 와서 용유담가에 와서 울면, 마적도사가 용유담에 살고 있는 아홉마리 용에게 다리를 놓게해서 나귀가 용유담을 건너오곤 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놓고 장기에 몰두하느라고 시간가는줄 모른다.그때 용유담에서는 눈먼 용을 제외한 8마리 용이 서로 하늘에 승천하겠다고 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나귀는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자 나귀는 그대로 지쳐 죽었다. 나귀가 죽은 것을 안마적도사는 분을 참지 못해 장기판을 냅다 팽겨쳤는데 한쪽은 마적에 남아있고, 다른 한쪽은 용유담 건너 나귀바위에 있다.나귀가 죽은바위를 나귀바위라 이름한다.마적은 눈먼 용만 남기고 여덟마리는 쫒아버렸다. 먼훗날 송전리 주민들은 마적에 새길을 내야했다.이 나귀 바위를 폭파하지 않고는 새길을 낼수가 없었다.주민들은 부득불 나귀바위를 폭파했다. 이때 말방울 16개가 나왔다.신라 무열왕(659) 법화사와 같이 창건한 마적사 마적도사가 절을 떠나던날 배나무 한그루를 절에 심었다.이것이 죽으면 나도 죽은줄 알아라 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엄천골; 엄천이란 말은 "불교의 계율을 엄하게 계혜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엄천골 한남 마을은 세종대왕 열두번째 아들 한남군의 유배지이다.1456년 단종복위 실패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등 사육신은 처형당하고, 계유정란 당시 영풍군과 함께 한남마을 앞 새우섬에 유배시키죠.한남마을에 한남군이 거처하던 집터에는 누구든지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재앙을 겪어 패망하여 지금은 집터의 주춧돌만 남아있어 슬픈역사를 읽는다. 한남군 묘는 함양 상림 정수장 뒤에 있다.
백련마을; 고려말 개성유수 이억년이 남은 여생을 보냈던곳 원나라 내정간섭으로 고려 국정이 어지러운 것을 한탄이때 은둔했던 이백년의 이름을 본따 백년이라 불렀다. 백련암은 이백년과 `이억년 형제의 명복을 빌기 위한 암자이다. 이백년 형제의 "투금강 이야기" 유명하죠!!
추성리: 가락국 마지막왕인 구형왕이 추성을 쌓았는데,성의 이름에서 유래된 이름 추성리추성리에는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칠선계곡이 있다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있다. 추성->용소->두지터->추성망바위->선녀탕->옥녀탕->비선담->칠선폭포->대륙폭포->삼층폭포->천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