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 입구에 오른쪽 호법장군, 왼쪽장승 금호장군이 사천왕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미녀들 뒤로 호법대장군이 보인다.
돌담 사이로 예쁜 털제비꽃이 방긋^^
벽송사는 1520년(중종15)벽송지엄대사가 중창 1950년 육이오로 인해 불타 소실 되었으나 재중건 한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벽송사 도인송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꼽아 놓고 500년 뒤에 돌아 오겠다고 말하고 열반하였다.
주장자는 소나무가 되었고, 이후부터 도인송으로 불리게 되었다.
벽송사 미인송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환성지안 선사를 남몰래 연모하던 부용이라는 낭자가 스님이 돌아가시자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벽송사에서 스님의 정녕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이었다. 이후 항상 소나무엔 학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고 전해지고, 미인송이란 이름도 이때 얻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큰개불알꽃"이지만, 이름이 좀 그렇다고 "봄까치꽃"이라고 부르자는 학자도 있다.
2월부터 꽃이 피는 아주 작은 꽃이라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아주 예쁜 꽃이다.
벽송사는 부용만개,청학포란의 명당터라 서산대사, 사명대사님도 여기서 수도정진하여 도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벽송사가 있는 마을을 광주리점,강아리점이라고 한다.송지암 스님이 득도하기전 십년간 광주리를 만들어 팔던곳이라 유래된 이름이다.
송지암은 전북 부안군 송씨 가문에서 태어났다.10세전에 사서삼경을 읽었고, 20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장군으로 변방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지만, 격전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허망함을 느끼고 계룡산으로 들어가 불교수행을 한다.용문산,오대산,백운산 등지를 거치면서수도를 하던중 법계정심대사를 찾아 지리산에 입산한것이 57세 되던해그무렵 법계정심대사는 이조 조정의 척불의 화를 피해 싸리나무 광주리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허구헌날 송지암에게 광주리 만드는 일만 시킬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송지암은 떠나겠다고 했다.
"가고 오는 것은 자유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말씀을 듣고 하산하다가 그말을 되새기며 되돌아와 법계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솔함을 사죄하다 득도한다.벽송대사기 득도한지 3개월 후 법계대사는 열반에 들게 된다. 그후 벽송이 많은 제자들의 마음밭에 법비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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