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추어탕을 먹는 오후

대봉산 2014. 7. 9. 23:28

추어탕을 먹는 오후
                                                                       김 수 복
함양 시외버스 정류장 옆 송월식당 주인 조준영 할머니

끓인 추어탕 맛에선 가을 초승달의 발소리가 들린다.

이 지나가는 우물 속으로 풍덩 던지던 두레박 소리도

가도 가도 끝없이 들리던 추억의 소리가 숨은 뒤안길도 있다.

고 온 절망의 뒷모습도 있다.

슬며시 내오는 간고등어구이 두 토막에는 묵은 뒷간의 바람도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치볶음에는 고추의 저린 슬픔이 있어 더욱 슬펐지만 그 빛깔이 멍이 든 오래된 담장 같다.

추석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는 아들을 기다리느라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밖을 내다보며
기웃거리는 달을 바라보다가 바람이 차갑다고 낡은 문을 닫는 그 눅눅하고 찬 사투리의 맛이

더욱 그윽한 추어탕을 먹는 초가을 오후 저녁 저물 무렵의 시외버스 정류장 너머

갈까마귀 날아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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